<2010 문화 인터뷰> 영원한 '현역' 박맹호회장
<2010 문화 인터뷰> 영원한 '현역' 박맹호회장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1966년 서울 종로의 작은 옥탑방 한 칸에서 문학 출판사로 출발한 민음사는 비룡소, 민음인, 황금가지, 사이언스북스 등 여러 브랜드를 두고 해마다 신간 수백 종을 펴내며 국내 출판문화를 이끄는 출판그룹으로 성장했다.
민음사를 43년째 변함없이 이끌고 있는 박맹호(75) 회장은 출판계 원로인 동시에 일선을 지키는 현역이다. 많은 출판사가 이미 2세 경영에 돌입했고 박 회장 역시 2005년 대표 자리를 내놓고 회장 자리로 옮겼으나 여전히 기획에 앞장서는 아이디어 뱅크이자 튼튼한 버팀목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느라 바쁜 연말, 서울 신사동 강남출판문화연구소에서 만난 박 회장은 "격동기를 겪으며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나는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도 새벽 4∼5시면 눈이 떠집니다. 아침에 신문과 뉴스를 보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올라요. 끊임없이 생각하고 동료에게 전하려 하죠. 그래도 내가 아직 그렇게 노쇠하지는 않았구나,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터뷰 내내 눈을 빛내며 힘 있는 목소리로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출판 정신을 설명하는 박 회장의 모습은 여느 젊은이 못지 않았다.
박 회장은 '세계 시인선', '오늘의 시인 총서', '오늘의 작가 총서' 등을 차례로 기획, 전집물 방문 판매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출판 시장에 혁신을 일으키며 단행본 출판 시대를 이끌었다.
또 문학 계간 '세계의 문학'을 창간하고 '오늘의 작가상'과 '김수영 문학상'을 제정해 한국 문단의 대표 작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왔다.
"당시 출판 시장에서 팔리는 책은 외판 전집류와 대중 소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대로는 창조적 출판이 어렵다고 생각해 시집을 비롯한 본격문학 작품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민음사가 창작 단행본의 깃발을 올렸다는 자부심 하나는 있습니다."
박 회장이 '백성의 목소리를 담는다'는 뜻의 민음사라는 이름을 짓고 꾸려오면서 가장 이름에 걸맞은 성과를 거둔 일로 꼽는 것도 1960년대 '오늘의 시인 총서'를 시작한 것이다.
"책은 정신을 담는 그릇이지요. 해방 이후 등장한 소장파 시인들의 시집을 내기 시작했어요. 당시엔 김소월이나 유치환 시집이 주로 읽힐 때였으니 모험이었지요. 그러나 일단 출간을 시작하자 나오는 대로 단시일에 매진되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민음사는 한국 문학뿐 아니라 외국 문학의 번역 수준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어를 중역한 외국 문학이 다수를 이루던 때 원문 번역을 시도했고 1998년부터는 세계문학전집을 내고 있다.
"대학 다닐 때 꿈이 세계문학전집을 내 손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작가들이 세계문학전집 반열에 들 날이 올 날을 꿈꿨죠. 15년 가까이 준비하고 번역하는 기간을 보냈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으니 고전도 무궁무진하죠. 1천권 쯤은 충분히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민음사가 문 닫는 날까지 세계문학전집은 계속될 겁니다."
그는 출판계에서 뚝심을 가지고 40여 년간 개척의 길을 주로 밟아온 데 대해 "사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게 훨씬 더 쉽다"며 여유와 익살을 담아 설명했다. '블루 오션'이란 말이 없었을 때부터 그 개념을 일찌감치 실현했던 셈.
"자본력 강한 출판사들이 할 만한 책은 오히려 위험해요. 다른 곳에서 내지 않는 책을 내는 게 경쟁 안 하고 편안하게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과당경쟁도 없을 테고, 작가 선정하기도 좋고. 반발짝만 앞서 가면 됩니다."
박 회장은 올해도 숨가쁘게 보냈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는 올 초 200권을 돌파해 연말까지 230권을 냈으며, 1980년대 이후 발표돼 문학성을 인정받은 세계문학의 주요 작품들을 소개하는 새로운 시리즈 '모던 클래식'을 시작했다.
"올해에는 '모던 클래식'을 내놓은 것이 가장 의미가 있습니다. 세계문학전집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기도 하지만, '모던 클래식'은 1980∼1990년대에 출간된 새로운 책들을 포함하게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기분 좋게 출발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민음사는 책 출판에 머물지 않고 사회에서 나눔도 실천하고 있다. 올 가을에는 세계문학전집 수익금 일부를 각막 이식 수술비로 지원했다.
"그동안 학교 발전기금을 내기도 했고 낙도에 도서관을 짓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200권 이상 나온 비룡소 그림동화 시리즈의 수익으로 난치병 아이들을 도우려 하고 있고요. 사람들이 다함께 사는 사회이니 기업들이 나눔을 실천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민음사는 제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새해에도 새로운 기획을 선보일 계획이다.
먼저 내년은 경술국치 100년, 4.19혁명 50주년 등이 되는 해이므로 한국 시민사회 형성 과정을 되돌아볼 수 있는 출판을 기획 중이다.
또, 내년 봄부터는 서울대에서 인문학 연속 강연에 나설 계획이다. 인문학의 대중화와 출판과 사회의 소통을 위해서다. 이 프로젝트도 박 회장이 기획해 현재 80%가량 진행된 상태다.
"인문대 소장파 교수들을 중심으로 대중과 학생들을 상대로 강연하고 수익금으로 책도 만들려 합니다. 사회가 위기에 처하면 기본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인문과 문학이 출발점이 돼야 해요. 그래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갑니다."
박 회장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출판 시장에 대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전자책이 등장하고 시장에 대처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종이책의 미래는 밝다는 것이다.
"내가 출판을 시작할 때에도 아날로그 인쇄는 위기라고 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읽고 있잖습니까. 컴퓨터로 본 것은 쉽게 잊어도 종이로 본 것은 머리에 입력이 더 잘되거든요."
인터뷰에 배석한 장은수 대표 역시 "전자책에는 새로운 독자를 만들 수 있는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지 2가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민음사는 콘텐츠를 가지고 있으니 시장이 관건이고, 지켜보려 한다"고 덧붙였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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