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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문화 인터뷰> '숭례문 복원' 신응수 도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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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문화 인터뷰> '숭례문 복원' 신응수 도편수

(서울=연합뉴스) 김윤구 기자 = "숭례문이 불에 탈 때의 심정은 말로 못합니다. 참담했죠. 그 숭례문 복원을 제 손으로 하기로 결정 났으니 혼을 담아서 재현하겠습니다"

문화재청이 내년부터 시작되는 숭례문 복원 작업을 맡을 분야별 장인을 최근 발표했을 때 대목 분야를 맡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 기능보유자 신응수씨는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장인들이 참여하는 분야는 대목 외에도 단청, 석공, 기와 등 여럿이 있지만, 대목 분야를 총지휘하는 장인을 도편수라고 부른다. 도편수는 과거에 건물을 지을 때 모든 작업 과정을 총지휘했고 분야별로 전문화된 요즘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목장 기능보유자 3명을 포함한 모두 4명이 문화재청에 제안서를 낼 정도로 숭례문 복원을 맡으려는 경쟁은 치열했다. 국보 1호인 숭례문을 복원한다는 것은 곧 우리나라 최고의 목수로 인정받는다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었다.

신씨가 도편수로 선정된 것은 현재 그가 지휘하고 있는 광화문 복원공사를 비롯해 우리나라 궁궐 건물을 복원한 경험이 가장 풍부하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숭례문 도편수로 뽑힌 것은 속으로야 기쁘죠. 이만치 와서 인정받았구나 하는 보람을 느끼지만 그걸 대놓고 말할 수는 없어요. 국민들 가슴을 아프게 한 건물인데 '영광된 일이다' 이렇게 표현할 수는 없는 일이죠. 경사스러운 일이 아니잖아요. 무엇보다도 어떻게 제대로 해내느냐 하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는 숭례문이 화마에 휩싸인 2008년 2월10일을 잊지 못한다. 오후 9시에 경복궁에서 복원 공사를 하다가 숭례문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외투도 갖춰 입지 않은 채 바로 숭례문으로 달려갔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연기만 나던 상황이라 불이 꺼질 줄 알았는데 홀랑 다 타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이튿날 낮 2시까지 현장을 지키면서 숭례문이 불에 타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참담했습니다. 그때의 심정은 분노와 안타까움, 그리고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숭례문은 국민 모두에게 소중하지만 목수인 그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그에게 숭례문은 좋은 스승과 인연을 맺어 제대로 된 목수 일을 처음 배운 곳이다. 궁궐 목수의 길을 열어준 건물이기도 하다.

1962년 숭례문의 목조 부분을 모두 해체하는 보수 공사가 진행됐다. 전쟁을 겪으면서 숭례문은 기왓장이 흐트러지는 등 겉보기에도 심각하게 훼손돼 있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나서 국보 1호부터 고치자고 해 보수에 들어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숭례문 보수공사를 할 때 이광규 선생님을 따라 공사에 참여했다"면서 "선생님이 부편수였고 조원재 선생님이 도편수를 맡았는데 숭례문 공사를 하는 동안 조원재 선생님 집에 들어가 지내면서 일에 눈을 떴다"고 회고했다.

당시 한창 일을 배우던 젊은 목수는 이제 국내 최고로 손꼽히는 도편수가 돼 48년만에 다시 숭례문 복원에 참여하게 됐다.

복구 작업을 시작하는 내년이면 그는 68세가 된다. "저한테는 최고의 적기라고 봅니다. 여태까지 쌓은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데 나이를 더 먹으면 어렵죠. 현장에서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나이에 일을 맡았으니 경험을 충분히 발휘해야죠"

광화문 복원이 조선시대 고종 대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했듯이 숭례문은 1962년 복원 당시의 모습으로 되돌리고자 한다.

공사는 옛날 도구를 활용해 전통 기법으로 하기로 했다. 창경궁이나 경복궁 복원 공사에도 전통기법이 활용됐는데 숭례문 공사에는 현대 장비를 가능한 한 쓰지 않고 전통방식으로 작업할 계획이다.

재목을 다듬고 손질할 때도 도끼나 대자귀, 내림톱 같은 전통 도구를 사용하고 목재를 끌어올릴 때도 전통 운반도구인 거중기를 쓰는 식이다.

전통 기법으로 하면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미학적으로도 더 뛰어나고 역사적 의미도 커진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되도록 불에 타기 전의 나무를 많이 쓸 계획이다. 불에 타거나 충격을 받는 등 약간 손실이 있어도 때워서라도 써야 가치가 있다"면서 "선대 장인이 어떤 나무를 쓰고 어떻게 깎았는지 나무 하나라도 다 분석해서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경력 10~20년 이상의 제자 10여명과 함께 차근차근 복원 작업을 진행해 2012년 상반기까지는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내년은 숭례문 복원을 시작하는 동시에 광화문 복원을 끝내는 해다. 지난달 상량식을 한 광화문은 내년 2월이면 목공사가 끝나고 10월에 준공 예정이다.

광화문 복원은 장장 20년에 걸친 경복궁 복원을 마무리하는 일이다. 그는 1991년 경복궁 복원정비 사업을 맡아 침전권역, 동궁권역, 흥례문권역, 태원전권역, 건청궁권역 등 90여동의 건물을 복원했다.

50년 넘은 그의 목수 인생에서 꼬박 20년이 걸린 경복궁 복원은 가장 소중하고 뿌듯한 일로 남았다.

16세 때 목수 일을 시작한 그는 1975년 수원성곽 복원공사에서 도편수를 처음으로 맡았다. 이후 경주 안압지 내 건물을 복원했으며 창경궁과 창덕궁의 주요 전각 보수 정비공사를 진행하는 등 100건이 넘는 복원 작업을 해왔다.

그는 "조원재 선생님은 쉽게 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목수 일을 하는데 기본에 벗어나지 않게 원칙을 지키라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그 말씀을 그대로 지키려고한다"면서 "숭례문 공사는 예산의 배가 들어가더라도, 돈이 부족하면 내 돈을 더 대더라도 공사비와 상관없이 제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kimy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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